유전자 편집, 과학적 진보와 윤리적 딜레마 사이
‘유전자 가위’라고도 하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은 인공지능(AI)만큼 막대한 파급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래 기술로 꼽힌다. 유전자를 잘라내고 붙일 수 있는 일명 ‘신의 도구’로 불린다. 이러한 유전자 교정을 통해 암, 당뇨 등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제거하고, 태어날 아기가 좋은 유전자만 선별적으로 물려받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 생물학자가 윤리 의식 없이 마음대로 유전자를 편집하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활용성과 장단점을 살펴보자.

1997년에 제작된 앤드루 니콜 감독의 SF영화 <가타카>에서는 ‘맞춤 아기’가 등장한다. 이 맞춤 아기는 말 그대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편집해서 태어난 아기이다. 부모는 태어날 아기의 성격과 재능, 수명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에서도 호박에 갇혀 있던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해 다른 파충류의 DNA를 잘라 붙여 공룡을 재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기술이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저항력을 갖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여아가 태어난 사례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고유한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DNA’라고 부른다. 유전자 편집, 즉, 유전자 가위는 사용자가 원하는 DNA 염기서열을 골라 잘라내는 기술이다. 이는 정확도가 99%에 달하는 기술로, 자르고 싶은 염기서열과 결합하는 RNA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합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20년 제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DNA 염기는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의 4가지 종류가 있다. A와 T, C와 G가 항상 결합하는데, 이 염기의 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 정보에 차이가 생긴다. 유전자 가위는 바로 이런 염기서열을 정확하게 인식해 DNA를 자른다. 염기서열을 자르고 이 자리에 다른 염기를 넣으면 유전 정보가 달라지면서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실험에 필요한 동물이나 세포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 편집에 가장 많이 쓰인다. 유전자의 기능을 찾거나,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연구하는 용도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골다공증, 헌팅턴병, 근육위축증, 알츠하이머병 등 각종 질병의 치료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2023년 처음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고, 뚜렷한 치료법이 없던 유전병 근육위축증 치료제도 2020년에 먹는 약으로 승인받기도 했다.
또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갈수록 심해지는 식량 문제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물에 온도 변화, 가뭄, 병충해 등 지구 기후 환경 변화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를 넣는 것이다. 2021년 일본은 유전자 교정을 통해 영양 성분을 4~5배 많이 갖는 토마토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기도 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태어난 돼지가 식탁에 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영국의 생명공학 기업 제너스는 사육 현장에서 돼지가 ‘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 일부를 편집했다. 이 증후군은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으로, 기침과 고열을 유발하고, 어린 돼지가 감염되면 성장이 늦어지거나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유전자가 교정된 돼지가 보급되면 축산 농가의 비용을 줄이고 동물 감염병 사태 시 불필요한 살처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돼지는 미 식품의약국(FDA)에 유전자 편집 돼지의 식용 허가를 받고 제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69억4,000만 달러였던 유전자 편집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32년 299억3,000만 달러(약 38조83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10년 동안 무려 4배 이상 증가하는 수치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난제인 질병, 식량, 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되고 있음에도 안전성과 효능의 입증, 사회적 합의 및 법적·윤리적 문제 등이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영국, 미국, 중국 등은 연구 목적에 한해서 인간배아 유전자 편집을 허용하고 있으나, 한국은 금지하고 있다. 유전자 편집 동·식물에 대한 GMO 규제 적용 여부 역시 나라마다 상이하다. 미국, 호주, 일본 등은 유전자 편집 작물을 규제하지 않고 있으나, 유럽은 GMO와 같은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도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한 규제 완화의 움직임이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진정제 및 임산부 입덧 억제제로 널리 사용되었던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의 경우 시판을 위한 사전 실험에서 쥐, 햄스터, 개, 고양이 등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는 인간 태아의 팔다리 형성을 방해해 임신 초기에 이를 복용했을 경우 팔다리가 거의 성장하지 않는 등의 심각한 기형을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40여국에서 1만명이 넘는 기형아가 탄생하기도 했다.
동식물을 넘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은 현재 수준에서는 이득보다는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게 과학계의 시각이다. 하나의 유전자를 조작했을 때, 다른 어떤 문제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 배아 유전자 조작은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 AhnLab콘텐츠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