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잊혀질 권리를 허하라
인터넷 정보들의 역습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즈 주연의 “사랑과 영혼”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서 영매로 분한 우피 골드버그는 이미 죽어 영혼이 된 패트릭 스웨이즈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데미 무어를 설득하려고 그녀의 신상에 대해 이것 저것을 알아맞춘다. 그러자 데미 무어는 이 정도는 쓰레기통만 뒤져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며 꺼지라고 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또한 다른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사설 탐정이나 수사기관에서 용의자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정보를 수집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사실 어린 시절 이런 영화를 볼 때 쓰레기통에서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방법으로 단서를 찾아내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보면 매우 유용한 방법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토커들 또한 동일한 방법으로 자료를 모으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손쉽게 알수있는 타인의 취향
갑자기 쓰레기통 뒤지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중요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방치했던 정보가 누군가에게, 어떤 시점에서는 의미 있는 정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로 인터넷 세상을 쓰레기통에 비유한다면 억지일까? 물론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체이고 활용면에서 과거 어떤 것보다 유용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 병폐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몇 년 전부터 지나치게 발단한 검색 사이트는 이미 그 필요를 넘어 지나치게 성능이 뛰어나다.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의 타이핑과 검색으로 누군가의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인 중 한 명은 가끔 검색 사이트에서 자기 이름을 두드려 본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장난삼아 시작했으나 최근에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기 이름뿐 아니라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해보며 동태(?)를 파악한다고 하니 편리하지만 그 병폐 또한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 서비스나 까페, 쇼핑몰 등 다수의 사이트에 ID나 닉네임 등의 식별문자들을 동일하게 사용한다. 어떤 사람의 작은 정보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신상이나 졸업학교, 관심 분야 등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정보들이 좋은 방향으로 사용이 된다면 좋겠지만 음성적인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이버 스토킹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내 과거를 할복한다
지난달 충격적인 기사1)를 보았다. 인터넷에서 본인이 공개한 정보를 지우기 위한 web2.0 suicide machine(웹2.0 자살 기계)와 또 다른 유사한 서비스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불어 최근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흔적들을 없애는 것을 넘어 사이버 정체성을 버리고 현실 세계에서의 자아를 회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또 다른 온라인 계정 삭제 사이트에 대한 담론을 소개했다. 일본어로 할복을 뜻하는 세푸쿠라는 이 사이트는 이름만으로도 사이버 세상에서 벌어지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보여준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주는 서비스의 등장이 반갑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일부 사이트로 국한되어 있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내 흔적을 남김에 있어 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일이 아닐까 한다.
작년 문제가 되었던 개인정보유출의 사건, 사고들을 보면 대부분이 전화번호, 주민번호, 카드번호 등에 관련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정보들은 금전적 피해와 직결되는 주요 정보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많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내용은 번호로 이루어진 개인정보 외에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생산해내는 정보에 대한 것이다. 쇼핑사이트에서 올린 짧은 후기 한마디, 블로그에 올린 친구 험담, 포털 사이트에 올린 질문…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소한 정보도 많은 양이 모이게 되면 한 사람의 인격이나 생활 패턴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어디서 누구와 점심을 먹고 쇼핑은 어디서 하며 어떤 정당을 지지하며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숨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알려져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말조심에 대해서 수많은 교육을 받는다. ‘말’이라는 것에 대한 속담도 많고 명언도 많은 것을 보면 분명 ‘말’이 중요한 화두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가 오프라인에서 내뱉은 한마디가 그 이야기를 들은 특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공기로 사라진다면 온라인에 남긴 말 한마디는 대부분의 경우 어딘가에 저장되고 또 다수의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비공개 정보조차 어느 서버에 저장되고 이것은 누군가 혹은 언젠가 접근 가능한 살아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언제 어디에 어떤 정보를 생산했는지 전부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생산은 쉽지만 파괴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무심코 남긴 글의 나비효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블로그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밤 광분하여 친구나 연예인 혹은 정치인에 대해 실명을 거론하며 욕을 했다고 치자. 며칠이 지나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내가 작성한 게시판에서 글을 지웠다. 만약 다수의 사람들이 글을 펌질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퍼가지 못하게 설정하는 기능이 있지만 캡쳐를 포함해 ‘불펌’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경우 일일이 다니면서 지워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작성한 글의 내용에 따라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사이버에서 ‘할복’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소개되고 생활에서 활용됨에 따라 세상살기가 너무나 편해졌다. 처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이메일 계정을 가진 사람도 많이 없었던 터라 신기하기도 하고 앞서가는 기분에 괜히 뿌듯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조심하고 또 주의해야 할 필요성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인터넷에서 정보 생산활동을 멈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산된 정보의 파급효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공할만한 보존력에 대해 각성하고 살자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생산한 정보가 나를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정보, 내가 지키자.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에 생성한 모든 정보를 삭제하고(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사이버 생활을 전부 중단하라는 말은 아니다. 보는 눈이 많다는 이유로 창작활동을 그만두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더 좋은 정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란다. 다만 인터넷상에서의 정보의 파급효과는 일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특정인에게 전달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길 바랄 뿐이다.
1. 까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독자의 범위가 친구나 동호회 회원들로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회사 동료 등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독자라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2.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할 때 사이트의 성격이나 분위기 그리고 약관을 살펴보고 미심쩍은 사이트는 가입하지 않는다.
3. 가입한 까페나 동호회, 기타 사이트 등은 모두 기록해두고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블로그나 서비스 등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탈퇴한다.
4. 기본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익명성 뒤에 숨어 책임지지 못할 말은 남기지 않는다.@
- 안철수연구소자유기고가 Sidney C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