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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에서 참고할 요소들 - [6부] 벤처, 희망이기 위한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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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3 |
기업의 속성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그 기업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나 문화는 다르기 때문에 벤처기업의 문화나 관행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은 위험한 일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개선해야 할 사항은 몇 가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둘러본 실리콘 밸리의 벤처문화를 비교 대상으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면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먼저 업무의 연속성 문제이다. 이것은 결국 시스템 문제인데, 이는 벤처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미비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스템 중심의 사회가 능사는 아니지만,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회사의 경우를 보자.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에서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면 그 과정에 대해 시스템화된 문서로 분명하게 남겨놓는다. 그래서 만약 실수를 할 경우 본인만 아는 게 아니라 모두가 알게 된다. 또 실수에 대한 원인과 평가도 문서로 남기고 제도로 반영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놓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업무를 하더라도 실수가 반복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프로세스 중심으로 정리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그 회사의 경쟁력은 커지게 된다. 즉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기업이 가진 무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유연성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진정한 디지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좋게 해석하면 아직도 인간 중심적이다. 물론 이것도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그 사람이 회사를 떠나면 노하우가 남아 있지 않아 다른 사람이 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실리콘 밸리의 벤처문화에서 또 하나 배워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확한 퇴출 시스템이다. 제도적으로도 퇴출 시스템이 명확하다는 것 외에,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퇴출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경영하다가 한 번 실패한 기업가를 회복 불가능한 낙오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 인간과 기업의 성장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해 버리는 데서 나오는데, 빨리빨리 문화의 부정적인 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실리콘 밸리에서는 벤처기업이 실패를 했을 경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게 검증이 되면 그 실패에 대해서 낙인을 찍지 않는다. 즉 인생에 있어서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한 번만 성공하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즉 기업가의 경우 주변에서 실패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회사를 어쨌든 살려보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더 크게 실패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주게 되니, 문제의 확대재생산인 셈이다.
그러므로 벤처기업가도 퇴출 그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때로는 과감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사업모델이 수익성이 없고 자본잠식에 가까운 상황이며 빚을 얻어 쓸 정도라면 스스로 회사 문을 빨리 닫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업종에 따라 수익이 생기는 기간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차입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익이 창출되는 기간은 더디나 진정으로 수익성에 확신이 선다면 빚을 얻기보다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수익성이 없더라도 앞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자에게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가 ‘벤처기업은 빚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벤처기업은 원래 리스크가 많은데, 투자 형식이 아니라 빚을 끌어다 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업무 시스템, 퇴출 마인드 외에도 M&A에 대한 인식, 아웃소싱 업체의 포지션 등도 실리콘 밸리에서 배울 요소들이다.
그런데 실리콘 밸리 방식이 다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연봉제의 경우도 우리가 자라오면서 받은 교육과 문화가 서구사회와 다르기 때문에 그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힘들다.
미국의 경우 연봉제는 대부분 성과에 따른 총액연봉제 개념이다. 그래서 연봉에는 월급, 보너스, 성과급, 스톡옵션이 모두 포함된다. 시스코 같은 회사는 임금은 다른 경쟁사보다 낮은데 스톡옵션에서 타 회사에 비해 많은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총액연봉제의 근본 취지는 회사가 잘되면 그것에 따라 공정하게 이익을 나눠가지자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장 자기 친구와 비교할 때 급여나 보너스에 기준한 연봉만으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보다 못한 곳에 다니는 친구가 월급이 많다고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비슷한 예로 직급을 들 수 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능력에 따라서 팀장이 될 수도 있고 나이 많은 사람의 상사가 될 수도 있는 게 미국식이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들은 좋은 점을 적절하게 도입하면서, 우리 문화에 맞게 조절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