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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적 합의를 위하여 등록일 2004-08-02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해 집단들 간에 이견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이견에 대해서 서로의 대화나 제삼자의 조정을 통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언제까지나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귀중한 국가적인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인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로 간의 신뢰 부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배신을 당해온 역사 속에서, 질투심과 경쟁심이 극심한 사회 환경 속에서, 그리고 투명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 하에서 수평적인 관계의 집단뿐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나 제삼자까지도 믿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제도적인 환경 하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자신만 손해 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만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은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소양을 함양하기보다는 개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협력과 역할 분담보다는 경쟁에 집중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말을 잘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방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듣고 싶은 부분만 듣고 자신의 생각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간에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해가 커지고 불신만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이나 그릇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 지식, 사색의 깊이와 폭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며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서로 간의 상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상식(common sense)’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한 분야의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생각이나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상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있으며, 상식이 모든 사람에게 ‘커먼(common)'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자기에게는 상식적인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의도를 의심하거나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폄하하는 것은 대화의 단절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나 토론 과정에서 감정과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존심과 자신의 의견이 뒤섞여 있는 것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최근에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모습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한 다음에도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거나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설득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 이에 수긍하는 태도를 가지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일단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을 한 다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입장을 고수하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서 토론과 협상이 잘 되지 않는 이유 중 일부분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신뢰 부족,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과 더불어 사회적인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 중의 하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중재자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두 집단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나 양쪽 모두 존경하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없다보니, 당사자들 간의 대화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는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전문가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또는 이론가가 득세하는 세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너럴리스트는 전체적인 방향은 제시해줄 수 있어도 구체적인 방법론은 취약한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일을 해보지 않고 책을 통해서 이론만 아는 것은 강에 발을 담그지 않고 강둑에 않아서 물살의 세기를 짐작하고 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경영학 교과서에서 인용되는 유명한 예 중에는 세계적인 전략가들이 회의실에 모여서 일주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거창한 전략을 완성했는데, 결국 이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실과 현장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 이론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뒤로 빠져 있는 상황에서는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고 의견을 내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결국은 전문가가 인정받지 못하는 전반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을 잘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한 분야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를 잘 아는 전문가가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우리나라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 지식을 쌓거나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배타적인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이 쉽게 나오거나 자리 잡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이렇게 전문가가 사회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나선다면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인사들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이순신 장군도 감옥으로 보냈던 척박한 우리 사회의 풍토도 일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 속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 나오기가 힘들며, 존경받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부재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는 사실을 이제부터라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투명성을 높이는 사회 시스템의 구축, 교육 제도의 개편, 전문가와 리더에 대한 인정과 함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국민 모두의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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